2010년 2월 3일 수요일

Media Day, 미디어가 강요하는 일상

아마 내가 계속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면, 한 손에 아이폰을 들고 등에는 노트북을 짊어진 채 회사에 가서는 데스크탑으로 일을 하고 있을 거다. 또, 거의 대부분의 텍스트를 스크린을 통해 읽고 소비하고 처리하고 있을 거다.

 

예전 같으면 pdf 파일로 스크린을 통해서 봤을 논문이나 보고서들을 지금은 다 출력을 해서 보고 있다. 보유하는 만큼 지식이 늘지 않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책이 쌓여가고 있다. 주로 암호와 같은 텍스트를 해독하다 보니 쉽게 쓰여진 글을 읽게 되면 꼭 죄를 짓는 기분까지 느낀다.

 

'Media Day'

최근 읽은 르페브르의 'Rhythmanalysis'에 나오는 한 개념이다. 의미를 부여해 번역하자면 미디어가 작용된 일상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미디어가 점유하는 일상(day)과 미디어가 표상하는 일상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개념이다. 미디어가 일상을 점유하고 일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르페브르의 ‘미디어 데이’ 개념의 핵심은 미디어가 작용된 일상과 그로 인한 대화의 상실이다. 르페브르는 미디어가 일상에 대해 말하지만, 그 끝과 시작을 찾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흐름은 전세계 모든 곳을 지배하고 있으며, 시간의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시간은 미디어에 의한 공허한 단어들, 말없는 이미지, 표상되지 않는 현실에 의해 점유되고 있다

 

이러한 미디어 때문에 우리는 실재(presence)와 표상된 현실(the present) 사이의 대립으로 끊임없이 되돌아가야만 한다. 표상된 현실은 실재를 흉내내고 이러한 미디어의 흉내를 사회적 실천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표상된 현실은 시간을 공급하고 점유하며, 살아 있는 것들을 흉내내고, 숨긴다.

 

‘미디어 데이’의 모든 순간에는 선택이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TV와 라디오를 떠날 수 있고, 다이얼을 돌리거나 버튼을 눌러 먼 곳의 메시지와 이미지를 보거나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메시지와 이미지의 수용자들은 자신이 알고 싶지 않은 것도 알게 된다. 사회적 생존을 위해 필요한 정보 이상을 습득하는 것이다. 미디어는 일상으로 들어가 일상을 만들어내면서 일상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미디어 속의 화자들은 자신은 보지 못하는 가운데 자신을 보고 있는 대중들과 대화한다.

 

르페브르의 지적처럼 현대 사회는 미디어가 작용하는 일상이 지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의 미디어 연구들은 주로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해 어떠한 내용을 어떻게 전달하며 수용자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얼마전 아버지가 스마트폰이 뭐냐고 나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한창을 설명하다가 아버지가 쓰실 일은 거의 없으실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아버지께서는 남들 다 갖고 있는 거면 사야되지 않냐며 필요 없더라도 하나 구입하시겠다고 하셨다.

 

아이폰, 아이패드 등등등이 세상을 바꾸고 있으며, 바꿨으며, 바꿀 것인가? 내 생각이지만, 적어도 우리 아버지에게 아이폰의 등장은 부담스러운 것이다. 왜 필요한지 모르지만 남들이 갖고 있기 때문에 사야 하는 것이다. 아이폰이 무엇을 전달해서가 아닌 아이폰이라는 기기 자체의 존재가 그 부담을 주는 것이다.

 

문자가 발명되고 종이가 발명되고 금속 인쇄술이 발명되고 유선 전화가 발명되고 무선 전신, 무선 통화, 라디오, 영화, TV, 위성방송, 휴대전화 등등등의 기술 발달 과정의 간격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음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보기 위해서 PDP TV를 굉장한 거금을 들여 구입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거금을 들여 산 TV도 성능이 떨어져 제대로 된 화면을 시청할 수 없다고 미디어들이 말하고 있다.

 

개인은 이걸로도 충분하지만 미디어는 더 나은 만족이 있으니 거기로 이동하라고 계속 압박한다. '미디어 데이'의 모든 순간에는 선택이 있지만 그 선택을 강요한다. 하버마스적 개념의 공론장은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기술이 인간의 이성을 담보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성적이지 않기 때문에 강요된 선택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공론장의 가능성을 찾는 모든 연구들은 이제는 그만할 때가 됐다.

 

새로운 미디어, 기기, 기술 등의 등장은 점점 부담 또는 압박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고, 그것에 숨어 있는 무서움을 서서히 사람들이 깨닫게 될 것이라고 본다. 내 생각에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