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같이 회사가 조용한 날에는 자리에 앉아 있다보면 이런 저런 생각이 난다. 그런데 갑자기 이 영화가 생각났다. 이 영화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예전에 썼던 감상이 있어서 올려 본다.
1. "서독 같은 나라는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아이를 낳으면 세금을 면제해 준데
프랑스에서는 아이를 낳기만 하면 병원비도 공짜고 3번째 아이를 낳을때는 나라에서 아예 돈까지 준다고 한데..."
"우리나라는 날이 갈수록 살기 힘들어질거야... 사람이 좀 많아야지..."
영화의 시작부분에서 이발소 여종업원인 미스유(김보연)가 춘식(이영호)에게 하는 말이다.
현재, 전라남도 전역과 충청북도 청원군 등 28개 시·군·구에서는 출산장려를 위한 출산축하금을 지급하고 있고, 서울과 인천시에서는 셋째아이 이후 출생아가 보육시설에서 양육중인 경우에는 보육료를 지원하고 있다.
1980년에 만들어진 영화니 25년 전이다.
이 영화는 시간적으로 그만큼 지금과 떨어져 있다.
미스유는 춘식에게 기술을 배울 것을 권유한다.
자격증이라도 있어야 이 사람 많은 곳에서 버틸 수 있다고 하면서...
절대 사랑한다고 얘기하지 않으면서 춘식을 사랑하는 미스유다.
2. "하룻밤 자 줬다고 내가 니 맘대로 될거라 생각했어?"
덕배(안성기)가 명희(유지인)에게 처음 들은 말이다.
물론 덕배에게 한 말은 아니다.
"누구 사귀어 본 적 있어요? 키스는 해 봤어요? 내가 가르쳐 줄까요?"
명희는 덕배를 설래게 하지만, 거기서 멈춘다.
디스코장에서 쌩뚱맞게 사물놀이 춤을 추는 덕배와 그것을 즐기는 명희다.
3. "겨우 50만원? 그걸로 무슨 호텔을 하냐"
"시작이 반이야. 일단 시작했으니까 끝을 볼 수 있어"
"이 좀 닦고 뽀뽀해..."
이 닦는 길남(김성찬)에게 주인 아저씨는 물 값이 많이 나온다고 타박한다.
여관 종업원인 길남에게 미용실종업원 진옥(이연? 맞나 모르겠네)은 첫 사랑이다.
영화는 이 6명을 중심으로한 러브스토리로 내용을 풀어간다.
그들은 영화상으로 성북동인 서울로 편입된 지 얼마 안되는 허름한 변두리 지역에 살고 있다. 실제로는 천호동에서 찍었다고 한다. 철거가 이루어지고 연립맨숀(정확히 맨숀으로 나오더군)이 곳곳에 들어서 있고 조금만 더 움직이면 고급주택가가 늘어서 있는 곳이다.
춘식, 길님, 덕배 이들은 이름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촌놈이다.
"서울인구가 800만인데 진짜 서울 사람은 8만도 안된다"는 영화 속 표현처럼 그 1/10의 세계에 들어서고자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이 그저 서울가서 돈 벌어 보겠다고, 돈 벌어 잘 살아 보겠다고 무작정 올라온 이들이다. 중국집 배달원인 덕배, 여관 종업원인 길남, 이발소 직원인 춘식은 여러 직업을 거쳐 지금 이 곳에 있다.
춘식은 같은 이발소에서 일하는 미스유를 사랑한다.
미스유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어린 동생들과 병든 아버지를 수발하는 그 시대의 전형적인 시골 여성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부동산으로 벼락부자가 된 늙은 회장님(최불암-이 시대 아버지의 대명사인 최불암이 졸부로 나오는 것도 큰 재미다)의 정부가 된다. 사랑한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사랑하는 춘식보다는 돈을 택한다. 돈은 사랑을 억누르기에 충분한 것이다.
춘식은 그 늙은 회장님을 칼로 찌른다. 춘식은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 때문에 감옥에 가지만, 그건 그가 그 상황에서 모든 것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덕배는 부잣 집 딸 명희에게 끌린다.
덕배는 말을 더듬는다. 포니를 끌고가던 부잣집 딸 명희에게 치이면서 만남을 이간다. 명희에게 덕배는 남자라기 보다는 신기한 동물 또는 사람으로 보여지는 것 같다. 덕배는 세련됨과 미모를 지닌 그녀에게 반한다. 춘식의 여동생 춘심(임예진, 세바퀴의 그 임예진 맞음)사이에서 잠시 갈등하기도 한다.
그녀는 덕배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한산한 강변(영화속 강변은 이때도 두물머리더군요)을 드라이브하고, 디스코 클럽에서 춤을 춘다. 덕배는 그 곳에서 자신이 살던 농촌의 사물놀이를 떠올리고 그 춤을 추지만, 조명 아래 사물놀이 춤은 호기심으로 비춰지는 것 같다. 명희는 덕배에게 몸을 주지는 않는다. 명희는 그저 자신의 자유를 즐기기 위해 잠시 덕배를 선택했을 뿐, 그와는 다르다는 계급의식을 잠재의식 속에 갖고 있는 인물이다. 결국 덕배는 좌절하지만, 다시 용기를 내 복싱을 시작한다.
길남은 자신의 사랑에게 배신당한다.
서울에 올라와 첫 정을 주고 사랑했던 진옥에게 길남은 배신을 당한다. 진옥은 길남이 호텔을 짓겠다며 그동안 모아 두엇던 돈을 챙겨 도망을 친다. "애개 겨우 50만원"이라며 폄하했던 그 돈을... 길남은 돈보다 그녀가 자신을 속인게 서러워서 운다. 이들 주변에는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부부(김희라, ???)가 있다. 세 친구가 피곤에 지칠 때면 찾아 위로 받는 곳이다.
결국 세 친구들은 한명은 감옥으로 한명은 군대로 한명은 링위로 간다. 꿈을 갖고 꿈을 위해 살았지만, 서울 아니 세상이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니다. 길남은 입영통지를 받고 군대로 떠난다. 춘식의 여동생은 김밥을 싸와서 길남을 배웅하고 길남은 덕배와 춘식의 여동생의 손을 잡아주며 자신이 떠날 때까지 손을 놓지 말라고 당부한다. 덕배는 바람불어도 흔들리지 않아야 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덕배, 춘식, 길남은 여전하다
거의 30년전 영화지만, 그 캐릭터들은 지금도 유효하다. 포니가 BMW로, 맨숀이 타워팰리스로, 디스코클럽이 나이트로, 여관이 모텔로, 서독이 한국으로 바뀌었지만 아직 세상은 같다. 변한 건 껍데기들일 뿐이다.
이 영화는 이장호 감독이 황석영의 '객지'를 영화화 할려다가 노동자 얘기가 나온다고 대신 만든 것이라고 한다. 대마초 흡입으로 4년간 활동을 못한 후 재기작으로 들고 나온 영화다. 밑바닥에서 바라본 여러 모습을 영화에 그대로 살렸다고 한다. 덕배, 춘식, 길남은 외양을 달리한채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처음에 언급한 3개의 에피소드들은 단어 몇개만 바꾸면 지금도 유효하다. 자격증 없으면 취직도 안 되고 있고, 빈부격차는 심해진 상태로 여전하며 그에 따른 계급도 존재한다.
결국, 세상은 변한 것 같지만 그리 변하지 않은 것이다. 벽을 느끼고, 그 벽에 도전하고, 그 벽에 막혀 좌절하고, 다시 한번 도전하고 그게 세상이다. 그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다. 세상을 치장하는 화려한 겉모습들은 꾸준히 변하고 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에는 큰 변화가 없다.
현미경으로 바라볼 때 세포들은 매우 활발히 움직인다. 어떤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지는 과학자가 아니기에 잘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사회도 현미경을 갖고 본다면 같다. 모두가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그 세포위에 뭘 씌우던 속의 세포들은 꾸준히 움직이고 있다.
군사정권이 끝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고, 월드컵 4강에 오르고, 정권이 바뀌고 또 바뀌었지만, 덕배, 춘식, 길남의 삶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ps) 춘식역으로 출연한 이영호는 이장호 감독의 친동생이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151
영화 소개한 네이버 링크인데 성인 인증을 받아야 볼 수 있음
